돈과 자본 · 사업과 부
사업과 부 · 돈과 자본
짧은 글 7편
《돈은 삶의 방식의 도구다》 돈벌이는 결국 어떤 삶과 기여를 위해 쓰여야 하는가?
돈이란 무엇인가?
돈은 삶의 방식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왜 어떻게 가는지 아는 것이다. 곧 목표, 목적, 귀속이다. 나는 돈이 필요 없어도 직원에게 필요하고, 나는 필요 없어도 자선에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쓰되 쓰는 목적은 오직 중생이다!
맛을 찾으면 나를 위한 쓰임으로 들어가고 초심을 찾으면 오직 중생을 위한 데로 들어간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다. 돈을 벌고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는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갈 때 나는 교회에 가 벽화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하러 가는 느낌이다!
《재물신》 재물신을 숭배할 때 나는 부를 경외하는가, 부 뒤의 품성을 경외하는가?
그때 돈을 흙처럼 여기던 사람이 오늘 경외하고 숭배하는 신이다.
재물신에게 빌어 실제로 부자가 된다면 재물신은 탐관오리 아닌가?
심만삼은 돈을 흙처럼 여기고 나라와 백성을 구해 민심을 얻어 재물신으로 존중받았다.
관우는 황금 백 냥을 거절하고 정과 의리를 중히 여겨 민의에 따라 무재신으로 존중받았다.
국난에 백성이 굶주릴 때 쌀 한 말을 수북이 팔아 “뾰족하게 쌓지 않으면 장사꾼이 아니다”라는 덕으로 민생을 얻어 재물신으로 존중받았다.
모든 재물신은 당시 돈을 초월하여 중생을 위해 나섰던 사람이다.
재물신에게 절함은 탈속, 자비, 고상함, 경지에 절하는 것이다
재물신에게 절하는 것은 부를 비는 일이 아니다. 그 뒤의 비결은
고상한 사람을 경외하고,
자신의 속됨을 참회하며,
자신의 탈속을 기도하는 것이다.
돈 냄새를 초월하면 돈과 금을 끌어온다.
탈속하면 범속을 초월하고, 초월하면 위에 서며, 위에 서면 이끌고, 이끌면 존경받는다.
속된 연지와 분으로 어찌 고귀함을 닦겠는가?
온몸의 돈 냄새로 어찌 큰 그릇이 되겠는가?
《일과 만물을 구하다》 더 많은 일을 짊어지려 할 때 사유, 취사선택, 사랑, 덕행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가?
깊음 깊은 생각 깊은 생각이 만물을 낳는다
큼 크게 내어줌 크게 내어주면 만물이 모인다
참됨 참사랑 참사랑이 만물을 굴복시킨다
두터움 두터운 덕 두터운 덕이 만물을 품는다
넓음 널리 베풂 널리 베풀어 만물을 지탱한다
*주:*
깊은 생각 깊이 사유하여 성장 문제를 해결한다
크게 내어줌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참사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참사랑이다
두터운 덕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찰나 피었다 지는 것은 감당하지 못함이다
널리 베풂 끊임없는 비축만이 길이다
고달픈 운명은 자신이 불러온 것으로 외부와 관계없다
순탄한 운명은 수행으로 끌어온 것으로 운과 관계없다
《입금 전의 부에는 아직 조건이 붙어 있다》 장부에 있는 것 중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면 자기 재산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숫자가 늘어난 뒤 꺼낼 수 있는지, 언제 꺼낼 수 있는지,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아직 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진 것은 때로 이미 실현한 결과이고 때로는 실현을 기다리는 가능성일 뿐이다. 둘을 한데 놓으면 마음의 안정감이 손에 쥔 여유보다 커지기 쉽다.
수익을 계산할 때는 이미 받은 것, 아직 보유한 것, 추가 조건이 있어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덜 보기 좋아져도 자기 처지를 알 수 있다. 기대는 미래를 생각하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오늘 감당할 지출은 오늘 실제로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때문에 전망이 좋아 보이는 자산도 보수 전체를 대신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직무 책임을 지는 사람 역시 생활의 확실함이 필요하다. 수입을 프로젝트의 부침에 묶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 뒤의 선택이어야 하며,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그림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나는 간단한 물음을 남기고 싶다. 모든 평가액과 기대를 잠시 내려놓으면 지금 실제로 무엇을 계획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모든 기회를 대신 판단하지는 않지만, 이미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따로 두라고 일깨워 준다.
《수익을 말할 때 대가가 어디로 갔는지도 묻자》 같은 이익은 각 참여자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이익은 어떤 활동에 수입이 생겼음을 보여 주지만 누구에게 가치를 주었는지는 혼자 설명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이익은 공동 창조에서 올 수도 있고 정보나 지위의 차이, 자신이 싫어하는 결과를 남에게 넘긴 데서 올 수도 있다. 결과의 숫자만 보면 이런 차이가 뒤섞이기 쉽다.
나는 협력을 말하며 이타를 강조했고 시장에서 수익을 만드는 법도 말했다. 이 말들을 함께 놓으면 자신에게 물을 가치가 있다. 이익의 기회가 나타나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과정을 이해하는지, 충분한 선택을 갖는지, 대가가 사실대로 설명되었는지를 여전히 물을 것인가?
선한 목표가 모든 이익 창출 방식을 자동으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쓸모 있는 방법이라고 공정한지에 대한 답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내가 더 많은 정보와 영향력을 지녔다면 판단은 내가 얻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상대가 왜 참여하며 거절할 여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보아야 한다.
나는 이런 구체적인 질문 속에서 이타를 검토하고 싶다. 합리적인 보상을 허용하면서도 수익 방식에 대한 의문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칙이 설교할 때만 성립하고 이익 앞에서는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면, 계속 닦아야 할 것은 바로 원칙과 선택 사이의 거리다.
《돈의 용도, 자본의 책임》 돈과 자본은 각각 생활과 자원 배분, 책임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돈은 삶의 방식을 실현하는 도구이고 자본은 자원을 배분하고 책임을 지는 체계다.
《현금 흐름을 먼저 보고 규모를 말하자》 규모와 속도를 추구하기 전에 어떤 기본 조건부터 분명히 봐야 할까?
현금 흐름과 용도, 위험 감당 능력을 먼저 본 뒤 규모와 속도를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