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소통 · 표현과 창조
표현과 창조 · 표현과 소통
짧은 글 10편
《어떻게 말할까》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 목적과 이유, 행동 단계를 분명히 생각했는가?
좋은 연설은 말이 날카롭거나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는 것이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분명히 아는 것
무엇을 할지 분명히 아는 것
왜 할지 분명히 아는 것
어떻게 할지 분명히 아는 것
연설은 목적, 사랑, 순수한 초심, 행동 단계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내어줌》 한 번의 표현이 어떻게 청중 자신의 생각과 방향을 이끌어 낼까?
깊이 남는 기억
기억=느낌+상상
느낌의 근원
느낌은 청중의 사고 속에서 뜻밖에 일어나는 충돌에서 나온다
네 말은 청중이 원래 지녔던 관념과 부딪쳐야 한다
지혜로운 이의 발언은 내용 자체의 짜임새가 청중에게 주는 작용에 있지 않다
그의 연설이 청중을 일깨우는 데 있다
생각이 깨어나면 거대한 에너지가 생긴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와 학자의 차이다
배움은 청중에게 새로운 생각과 방향을 일으키고
깊이 생각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진정한 내어줌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밝은 길로 이끄는 것이다
《허풍도 핵심을 짚으면》 기세 좋은 말은 어떻게 해야 핵심을 짚었다고 할 수 있을까?
허풍도 핵심을 짚으면 명언이 된다
《상대가 말을 끝내게 하자》 답이 늦다는 것만으로 냉담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말을 보내고 잠시 기다려도 원하는 답이 없으면 계속 설명하거나 상대의 태도까지 대신 판단하기 쉽다. 상대가 입을 열 때는 원래 문제가 아니라 왜 냉담하고 왜 중시하지 않느냐를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문자 대화는 대면이 아니다. 상대는 생각 중이거나 아직 입력 중일 수 있다. 연이어 많이 말했다는 것은 내 조급함만 증명하지 상대가 다 들었다거나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증명하지 않는다. 이를 같은 일로 보면 뒤따르는 억울함은 추측 위에 선다.
물으려는 일을 먼저 명확히 묻고 답할 시간을 주자. 제때 확인해야 한다면 왜 급한지 밝히고, 오래 답이 없으면 계속 기다릴지 결정할 수도 있다. 다만 한 번의 멈춤과 지속적인 회피에 같은 판단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소통에서 즉시 결론 내리기를 참는 것도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한 문장을 다 말하게 한 뒤 수용할지 반대할지 정하자.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말하는 듯해도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말을 다 한 것일 뿐이다.
《태도를 판단하기 전에 우려부터 묻자》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싫어서인가, 다른 우려가 있어서인가?
남이 내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왜 협조하지 않느냐부터 묻기 쉽다. 이미 상대를 단정하여 태도만 해결하면 된다는 질문이다. 하지만 일이 막히는 이유는 돈, 시간, 방법,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서일 때도 있다.
하고 싶은 것과 감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할 가치가 있다고 현재 조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요구가 계속 변하면 상대의 망설임은 이행 못 할 약속을 피하려는 것일 수 있다. 이를 핑계로 바로 해석하면 논의할 우려를 대립으로 만든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걱정되고 어떤 부분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은 방법을 바꿔야 하는지 먼저 묻자. 각자 가장 중시하는 것이 속도인지 완성도인지 비용인지도 말해야 한다. 목표 순서가 다르면 같은 방안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명확히 묻는다고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우려가 타당하면 조정하고 이유가 확인을 견디지 못하면 더 묻자. 태도 전에 조건을 밝혀야 마지막 동의와 거절에 근거가 있으며 인품을 추측하며 일을 추진하지 않아도 된다.
《알리지 않는 것에도 대가가 있다》 복잡한 일을 혼자 짊어지면 왜 가까운 사람이 더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은 복잡하고 설명하기 힘들어 가까운 사람까지 걱정시키지 말고 혼자 처리하자고 생각한다. 배려의 뜻도 있지만 상대에게 결과만 보이게 할 수 있다. 왜 갑자기 계획을 바꾸고 늘 시간이 없으며 걱정이 많아 보이는가?
과정의 정보가 없으면 아는 것으로 해석한다. 중시하지 않거나 가까워지기 싫어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압박을 막아 주었다고 느끼지만 상대는 삶 밖에 세워졌다고 느낄 수 있다. 둘 다 억울한 것은 선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는 일이 달라서일 수 있다.
업무 세부나 타인의 사생활을 전부 말할 필요 없다. 공동생활과 관련된 것부터 말하면 된다. 지금 시간을 차지하는 일, 영향을 받을 계획, 스스로 처리할 것, 원하는 협조다. 답이 아직 없어도 무엇을 마주하는지 알릴 수 있다.
혼자 책임지는 것과 남을 완전히 모르게 하는 것은 두 선택이다. 가깝다고 모든 것을 맞혀 알지는 못한다. 필요한 정보를 나눠야 함께 계획할 기회가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생활은 한 사람이 정하고 다른 사람이 설명을 기다리는 일이 되기 쉽다.
《처지를 설명하며 다른 괴로움도 받아들이자》 내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의 억울함을 설명해 없앨 수 있을까?
내 어려움을 말하는 것은 이해받고 싶어서이지 꼭 상대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입을 열자마자 얼마나 힘들고 많이 내어주었는지 말하면 상대는 “더 억울해하거나 필요를 말해서는 안 된다”로 듣기 쉽다.
두 사람의 괴로움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압박이 있고 상대는 동행이 부족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한쪽을 설명해도 다른 쪽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 이유가 더 충분하다고 서둘러 증명하면 누가 더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비교하게 된다.
상대가 무엇을 신경 쓰는지 먼저 묻고 내 처지를 말할 수 있다. 압박을 말하며 어떤 부분을 이해해 주고 어떤 협조를 바라는지도 밝히자. 그렇지 않으면 많이 말해도 상대는 다음에 어떻게 할지 모른 채 감정이 다시 반박당했다고만 느낀다.
이해가 모든 요구에 동의함은 아니고 억울함을 듣는 것이 내 결정이 모두 틀렸다는 인정도 아니다. 둘을 나눠야 실제 처지와 상대 감정을 함께 남길 수 있다. 논의가 누가 더 힘든가에서 지금 어려움을 어떻게 줄일까로 돌아온다.
《사과에서는 내 책임부터 지키자》 잘못을 인정했다고 즉시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사과할 때는 못 한 부분을 알면서도 사정이 많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 뒤 곧바로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 입장을 바꿔 생각해 달라고 한다. 설명이 사실이어도 상대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여전히 나더러 먼저 이해하라는 말로 들을 수 있다.
어려움을 말해도 되지만 맡아야 할 부분도 남겨야 한다. 무엇을 잘못 처리하고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무엇을 보완할 수 있는지 먼저 밝히자. 영향을 인정하자마자 상대가 신경 쓰면 안 된다고 증명하면 사과는 받아 든 책임을 다시 밀어낸다.
설명은 정보 제공이지 용서를 청구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는 이유를 이해해도 시간이 필요하고 보완을 받아도 여전히 불만일 수 있다. 내가 말을 마쳤다고 계속 슬퍼하는 것이 일부러 괴롭히는 일이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과는 자기 전체를 부정하거나 자기 것이 아닌 책임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맡을 부분을 분명히 하고 가능한 보완을 계속하며 다른 불일치는 따로 논의하자. 사과를 성립시키는 것은 그 자리의 “괜찮아”가 아니라 이를 거래로 삼지 않는 자신이다.
《표현은 먼저 이해를 돕고, 그다음 행동을 돕는다》 상대가 행동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이해하도록 도왔는가?
표현은 먼저 이해를 돕고, 그다음 행동을 돕는다.
《알아듣게 말하고, 쓸 수 있게 하다》 복잡한 관점을 상대가 알아듣고 활용할 수 있는 말로 어떻게 풀어낼까?
복잡한 관점을 상대가 알아듣고 활용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자.